항목 ID | GC091014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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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榘 |
영어공식명칭 | Lee Gu |
이칭/별칭 | 대방(大方),활재(活齋),산양처사(山陽處士)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송석현 |
[정의]
조선 후기 상주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가계]
이구(李榘)[1613~1654]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대방(大方), 호는 활재(活齋)·산양처사(山陽處士)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단성현감 이경금(李景嶔)이고, 할아버지는 호조좌랑 이돈(李惇)이다. 아버지는 공조정랑 이광흡(李光洽)이고, 어머니는 황시간(黃時幹) 딸 장수 황씨(長水 黃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경유후(慶有後)의 딸 청주 경씨(淸州 慶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임인보(任仁輔)의 딸이다. 아들은 이주창(李冑昌)이다.
[활동 사항]
이구는 1613년(광해군 5) 지금의 충청북도 괴산군 소이면 금고리에서 태어나 관직 생활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서 자랐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이후 과거를 단념하고 가족들과 함께 외가가 있는 상주목 산양촌(山陽村)[현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으로 이주하였다.
이구는 상주 지역의 권구(權坵)·홍여하(洪汝河) 등과 교유하였고, 1645년 임금의 언교(言敎)[나라의 재난이나 중대한 사안이 발생하였을 때 해결 방안을 마련하기 위하여 널리 의견을 구하는 명령]에 상소문을 올렸으나 경상도관찰사가 기각하였다. 1650년(효종 1)에는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문묘종사 반대 상소문을 지었다가 감옥에 갇히기도 하였다. 이구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연이어 사망하자 상례를 치르면서 병을 얻어 1654년에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이구의 저술로는 문집인 『활재집(活齋集)』 7권 4책이 있다. 「변론율곡이기서(辯論栗谷理氣書)」, 「서여헌집인심도심설(書旅軒集人心道心說)」 등을 통하여 이이와 장현광(張顯光)을 이론적으로 비판하기도 하였다.
[상훈과 추모]
이구는 1786년(정조 10) 이만부(李萬敷)·권상일(權相一)과 함께 지금의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금천로 351-5[서중리 148-1]에 있는 근암서원(近巖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