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5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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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甁菴故宅[舍廊-] |
영어공식명칭 | Byeongam House (Men's Quarter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채릉산로 918-3[우산리 11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찬영 |
건립 시기/일시 | 1770년 - 병암고택[사랑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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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지정 일시 | 1985년 8월 5일 - 병암고택[사랑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30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병암고택[사랑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병암고택[사랑채]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병암고택[사랑채] -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채릉산로 918-3[우산리 112] |
성격 | 주택 |
양식 | 맞배지붕[사랑채] |
정면 칸수 | 4칸[사랑채] |
측면 칸수 | 1.5칸[사랑채] |
소유자 | 정현진 |
문화유산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병암고택의 사랑채.
[개설]
병암고택(甁菴故宅)은 정경세(鄭經世)의 6세손인 정종로(鄭宗魯)[1738~1816]의 동생 정재로(鄭宰魯)[1755~?]가 15세 때 분가하여, 1770년 지은 살림집이다. 현재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사랑채와 후대에 지은 대문채·안채·별채·화장실이 있다. 별채의 경우 ‘병천정(甁泉亭)’이라는 현판이 있는데, 원래 별채 건물은 정동두(鄭東斗)가 1840년 우산고개계곡에 지은 정자를 1962년 허물면서 옮겨 온 것이다.
병암고택[사랑채]은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으며,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이 시행됨에 따라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되었다.
[위치]
병암고택[사랑채]은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채릉산로 918-3[우산리 112]에 있다. 외서면 서쪽으로 4㎞ 가량 떨어진 이안천 변의 하우산마을에 서남향으로 있다. 하우산마을을 관통하는 큰길에서 갈라진 좁은 골목으로 조금 들어가면 나온다.
[변천]
병암고택의 안채와 별채는1900년대에 개축하였고, 이후 편의에 맞춰 화장실과 대문채 등을 지었다.
[형태]
병암고택은 사랑채·안채·별채·화장실이 안마당을 에워싼 튼 ‘□’ 자형이다. 대문채를 들어서면 사랑마당 뒤로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 뒤쪽인 동쪽의 안마당 너머로는 안채, 남쪽에는 별채, 북쪽에는 화장실이 마주보고 있다. 사랑채는 남자들의 생활 공간으로 편액은 ‘병암’이다. ‘병암’은 정철우(鄭喆愚)[1841~1925]의 호를 따서 붙이 당호이다. ‘一’ 자형에 정면 4칸, 측면 1.5칸이며, 맞배지붕에 기와를 이었다. 자연석을 이용한 기단과 주춧돌 위에 네모기둥을 세운 뒤 5개의 도리를 대량, 종량과 결구한 격식을 갖춘 구조를 취하였다. 평면은 가운데 마루방을 중심으로 북쪽에 구들방과 고방 각 1칸, 남쪽에 구들방 1칸이고, 고방을 제외한 대청과 구들방 3칸 앞으로는 툇마루가 놓여 있다. 각 방문은 전면·배면으로 문을 내어 출입하였고, 고방은 당초 사랑부엌을 고친 것으로 후면에 설치되어 있다. 방에는 통머름이 설치되어 있고, 각 방의 후면에 아궁이와 측면에 굴뚝을 두어 난방한다.
병암고택의 안채는 ‘一’ 자형으로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에 기와를 이었다. 평면은 북쪽부터 정지, 안방, 대청, 방 순으로 배열된 전형적인 남부형 살림집형이다. 구조는 사랑채처럼 자연석을 이용한 나지막한 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문을 달고 벽을 쳤다. 정지 위에는 여주인이 거주하는 안방에서 이용하는 수장 공간인 다락이 설치되어 있고, 넓은 대청은 가사 작업 및 다용도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창호 등은 사용자 기능 및 실생활에 맞춰 간결하다. 별채는 안마당을 향하여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에 우진각지붕에 기와를 이었다. 평면은 2칸의 넓은 구들방과 방과 마루가 겹으로 배열되어 있다. 대문채는 3칸 규모에 ‘一’ 자형으로 가운데 대문이 있고, 좌우로는 행랑방과 창고가 각기 배열된 팔작지붕에 기와를 이었다. 별채 뒤로는 수장 공간으로 알곡식을 저장·보관하던 두지가 있다.
[의의와 평가]
병암고택[사랑채]은 조선 후기 남부지방형 살림집 형태로 정자 또는 정사류의 특성을 보인다. 또한 별채 및 두지 등을 통하여 당시 생활 경제를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