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7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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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嶺南地圖 尙州 咸昌 |
영어공식명칭 | Youngnam Jido Sangju·Hamchang Map |
이칭/별칭 | 『비변사인방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 「상주」·「함창」 |
분야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재두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8년 12월 22일 - 『영남지도』 보물 제1585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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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영남지도』 보물로 변경 지정 |
소장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
소장처 | 상주박물관 -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84[삼덕리 산86] |
성격 | 고지도 |
문화재 지정 번호 | 보물 |
[정의]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채색 필사본 지도첩에 실린 상주목과 함창현 지도.
[개설]
『영남지도(嶺南地圖)』는 채색 필사본 지도첩으로 영조 연간에 만든 경상도 지역 71개 군현의 지도가 실려 있다. 7~8㎜의 1리 방안지(方眼紙)에 그려 거리 파악이 쉽다. 한 군현을 1장에 그려 전체를 6첩으로 묶었다. 비변사인(備邊司印)이 찍혀 있어, 『비변사인방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라고도 부른다.
[제작 발급 경위]
18세기 중엽 비변사는 지방 통치, 조세 징수, 행정 실무에 이용할 목적으로 전국 각 고을의 지리 정보를 정확히 파악하고자 하였다. 『영남지도』는 1리 간격 모눈 형식을 채택하여 제작한 지도첩으로 회화식 지도보다는 경상도 각 고을을 공간적으로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영남지도』의 제작 시기는 영조 연간인 1745년부터 1767년 사이로 추정된다. 제5첩 「하동지도」에 표시된 읍치는 1745년(영조 21)에 이전된 곳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제4첩에 수록된 안음(安陰)과 산음(山陰)은 1767년에 안의(安義)와 산청(山淸)으로 개칭되었다.
[형태]
『영남지도』는 6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4첩의 뒷부분에는 1871년에 제작된 함경북도의 「무이진도형(撫夷鎭圖形)」이 덧붙여져 있다. 제2책의 「경주지도(慶州地圖)」, 제6첩의 「하양지도(河陽地圖)」 등의 뒷면에 ‘비변사(備邊司)’라는 도장이 찍혀 있다. 1리 간격의 눈금이 있는 방안지에 지도를 그렸으며, 범례를 두어 특정한 정보를 기호화하여 표시하였다. 각 면은 적색 선 네모 안에 노란색으로, 역은 청색 선 네모 안에 붉은색으로 표시하였다. 지도 바깥에 주기한 산과 하천 및 서원이나 사찰 등 주요 시설을 지도에 표시하였다.
[구성/내용]
『영남지도』 「상주」는 제5-2첩에 해당한다. 가운데 지도를 두고, 위에 민호[23,788호], 전결, ‘곡물 총수(穀物 摠數)’, ‘군병 총수(軍兵 摠數)’, 읍성 둘레[3,883척], 읍치로부터 서울, 주변 고을, 각 면, 향교, 서원, 사우, 누정, 창고, 산성, 봉대의 거리를 주기(注記)하였다. 도남서원과 흥암서원은 사액 받았으나, 연악서원·속수서원·옥성서원·백옥서원·서산서원·봉산서원·근암서원, 충렬사·화암사는 사액 받지 않은 상태였다.
『영남지도』 「함창」은 제4-5첩에 해당한다. 『1872년 지방지도』 「함창현여지도(咸昌縣輿地圖)」와 달리 다른 고을처럼 북쪽을 위에 배치하였다. 현내면을 중심으로 방위에 따라 동면·상서면·하서면·남면·북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기 형식은 상주와 같고, 민호가 2,702호이다. 공검지 주변의 임호서원은 미사액(未賜額) 상태였고, 문경 조령에 있던 산창(山倉)은 읍치로부터 거리가 70리였다. 영남대로 변에 있는 고산(孤山)에는 1604년(만력 32) 왕자의 태를 봉안한 ‘태봉(胎封)’ 표시가 없다.
한편 상주박물관에도 1리 방안의 『영남지도』 「상주」·「함창」이 소장되어 있는데, 규장각본과 민호, 양부전(量付田), 군향미(軍餉米), 원회미(元會米), 읍성 둘레 등의 수치가 같다.
[의의와 평가]
『영남지도』 「상주」·「함창」은 방안식 지도로서 회화식 지도보다는 조선 후기 상주목과 함창현 관내의 산천과 주요 시설의 위치를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