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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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輿地圖書 尙州鎭尙州牧 尙州鎭管咸昌縣 |
영어공식명칭 | Yeojidoseo Sangju-jin Sangju-mok·Sangju-Jingwan Hamchang-hyun |
이칭/별칭 | 여지승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재두 |
편찬 시기/일시 | 1760년 - 『여지도서』「상주진상주목」·「상주진관함창현」 편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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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 한국교회사연구소 - 서울특별시 중구 삼일대로 330[저동1가 2-3] |
소장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
소장처 | 상주박물관 -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84[삼덕리 361] |
성격 | 읍지 |
편자 | 상주목|함창현 |
간행자 | 홍문관 |
권책 | 27장[상주목]|13장[함창현] |
행자 | 20행 20자 |
규격 | 34.5㎝[세로]|22.5㎝[가로] |
권수제 | 상주진상주목(尙州鎭尙州牧)|상주진관함창현(尙州鎭管咸昌縣) |
[정의]
[개설]
『여지도서(輿地圖書)』는 1760년 홍문관에서 지시한 목차에 따라 어람용·홍문관·성균관 각 1건, 경상감영 2건 등 모두 5건을 제작한 전국 읍지의 일부이다.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소장하고 있으며, 원래 영조 말 서명응(徐命膺) 소장본이었는데, 뮈텔 주교가 수집한 것이다.
[저자]
[편찬/간행 경위]
1759년 홍문관에서는 35개 항목의 수록 규정에 맞게 읍지를 편찬하여 보고하게 하였다. 경상도에서는 이후 5개 항목을 추가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모든 항목을 반영하였다. 당시 경상도 각 고을에서는 어람용·홍문관·성균관 등 중앙에 보고할 3건, 감영에 비치할 2건을 만들었다.
[형태/서지]
『여지도서』 「상주진상주목」·「상주진관함창현」 첫 장은 지도 2면이고, 본문은 인찰지(印札紙)에 장당 20행 20자로 정서하였다. 분량은 「상주진상주목」이 27장 54면, 「상주진관함창현」이 13장 26면이다.
[구성/내용]
「상주진상주목」 의 수록 항목은 상주목지지도(尙州牧之地圖), 강역(彊域), 방리(坊里)[호구 포함], 도로(道路), 건치 연혁(建置沿革), 군명(郡名), 형승(形勝), 성지(城池), 관직(官職), 산천(山川), 성씨(姓氏), 풍속(風俗), 궁실(宮室), 학교(學校), 단묘(壇廟), 공해(公廨), 제언(堤堰), 창고(倉庫), 물산(物産), 교량(橋梁), 역원(驛院), 목장(牧場), 관애(關隘), 봉수(烽燧), 누정(樓亭), 사찰(寺刹), 고적(古跡), 진보(鎭堡), 명환(名宦), 인물(人物), 제영(題詠), 한전(旱田), 수전(水田), 진공(進貢), 조적(糶糴),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세(均稅), 봉름(俸廩), 군병(軍兵) 순이다. 『여지도서』 경상도 유형 수록 항목 중 능침(陵寢)과 총묘(塚墓)를 생략하였는데, 상주목에 해당 없는 항목이기 때문이다. 권두의 방리, 도로와 권말의 한전부터 군병까지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없던 신설 항목으로 두어 자 정도 띄었다. 학교, 명환, 제영, 궁실, 총묘는 원래 홍문관에서 제외시킨 항목이었다. 또한 방리 항목에서는 내동면(內東面)부터 산북면(山北面)까지 30개 면의 관아로부터의 거리를 기재하였다. 1759년[기묘년] 통계에 의하면 상주목 호수는 1만 8416호, 7만 20명이었으며, 면별 호구는 생략하였다. 명환 항목에는 김유신부터 송인명까지 수록하였는데, 정종보 앞에는 구증(舊增), 송요년(宋遙年) 앞에는 신증(新增)을 표시하였다. 인물 항목에는 고려 김덕배부터 열녀 이씨까지 인물·우거·충신·효자·열녀를 수록하였으며, 우거의 홍우명 앞에 신증, 효자의 박세연 앞에 구증, 박언성 앞에 신증, 열녀의 정씨 앞에 구증, 황씨 앞에 신증을 표시하였다. 우거는 권상일(權相一)까지이다. 구증은 『신증동국여지승람』 편찬 당시 추가한 것이며, 신증은 『여지도서』를 편찬하면서 추가한 것이다.
「상주진관함창현」 은 「상주진상주목」에 비하여 성지·관애·진보 항목을 두지 않았으며, 궁실 앞에는 구증을 표시하였다. 방리 항목에서는 현내면, 동면, 남면, 상서면, 북면, 하서면의 관아로부터의 거리를 기재하였다. 1759년[기묘년] 통계에 의하면 호수는 2,571호, 1만 648명이며, 면별 호구는 생략하였다. 명환은 신소(辛紹) 1명이며, 인물 항목에는 고려 김택부터 열녀 채씨까지 인물·우거·절의·효자·효녀·열녀를 수록하였으며, 우거(寓居)의 홍귀달(洪貴達) 앞에는 신증을 표시하였다. 우거는 신석번(申碩蕃)까지이다.
[의의와 평가]
18세기 중반 조선 정부가 알고자 하였던 경상도 상주목과 함창현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 경상북도 상주 지역의 역사와 지리, 인문 환경뿐만 아니라, 조세와 군역의 규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