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헌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0843
한자 成獻徵
영어공식명칭 Seong Heonjing
이칭/별칭 문식(文式),통허재(洞虛齋),문간(文簡)
분야 역사/전통 시대,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채광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54년연표보기 - 성헌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71년 - 성헌징 「수석정기」 저술
몰년 시기/일시 1676년연표보기 - 성헌징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32년 - 성헌징 죽림서원 배향
추모 시기/일시 1733년 - 성헌징 제학 추증
추모 시기/일시 1910년 - 성헌징 문간(文簡) 시호를 하사받음
출생지 상주 - 경상북도 상주시
거주|이주지 능암리 - 경상북도 상주시 내서면 능암리 지도보기
성격 학자
성별 남성
본관 창녕(昌寧)

[정의]

조선 후기 상주 출신의 학자.

[가계]

성헌징(成獻徵)[1654~1676]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문식(文式), 호는 통허재(洞虛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성여백(成汝栢)이고, 할아버지는 성진승(成震升)이다. 아버지는 성호영(成虎英)이고, 어머니는 통덕랑 이동야(李東野)의 딸 덕수 이씨(德水 李氏)이다. 부인은 현감 박찬선(朴纘先)의 딸 상산 박씨(商山 朴氏)이고, 동생은 성만징(成晩徵)이다.

[활동 사항]

성헌징은 1654년(효종 5) 상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이름이 났고, 여덟 살 때 시를 지어 주위를 놀라게 하였다. 열두 살 때 지은 「수석정기」가 『상산지(商山誌)』 문한(文翰) 편에 실려 있을 정도로 문재(文才)가 뛰어났다. 열대여섯 살에 이르러 경학(經學)과 사서(史書)를 비롯하여 천문·지리·점술에까지도 통달하였다고 한다. 당대 기호 지방을 대표하던 학자 송기후(宋基厚)는 1671년에 성헌징을 만난 뒤 “견문과 학식이 높고도 밝으며, 언론이 정대하며 진실로 삼대(三代) 때의 인물과 같다”라고 칭송하였다.

성헌징은 이후 「문천도(問天道)」, 「태허설(太虛說)」 등을 지어 학문이 더욱 성숙되어 갔고, 특히 「천도책(天道策)」은 천지조화의 묘를 극론한 대문장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성헌징은 젊은 나이에 괴질에 걸려 1676년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성헌징의 저술로는 『통허재문집(洞虛齋文集)』이 전한다. 『통허재문집』은 1769년(영조 45) 흥암서원(興巖書院)에서 판각하여 간행되었다.

[상훈과 추모]

성헌징은 1732년(영조 8) 상주 창녕 성씨 문중 서원인 죽림서원(竹林書院)에 배향되었고, 1933년 경상도관찰사 조현명(趙顯命)의 건의로 제학에 추증되었다. 1910년(순종 3)에는 문간(文簡)이라는 시호를 하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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