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0971
한자 金蘇東
영어공식명칭 Kim So-dong
이칭/별칭 동파(東坡)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목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1년 6월 3일연표보기 - 김소동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4년 - 김소동 함창공립보통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38년 - 김소동 일본 도쿄중앙음악학교 졸업
활동 시기/일시 1947년 - 김소동 「모란등기」로 영화감독 데뷔
활동 시기/일시 1951년 - 김소동 연희대학교 철학과 학사
활동 시기/일시 1954년 - 김소동 영화감독협회 회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56년 - 김소동 영화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감독
활동 시기/일시 1957년 - 김소동 영화 「아리랑」 감독
활동 시기/일시 1957년 - 김소동 시나리오작가협회 회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58년 - 김소동 영화 「돈」 감독
활동 시기/일시 1960년 - 김소동 한양대학교 영화학과 창설
활동 시기/일시 1969년 - 김소동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석사 취득
활동 시기/일시 1972년 - 김소동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문학박사 취득
활동 시기/일시 1972년 - 김소동 영화학회 발족 및 초대 회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80년 - 김소동 예술원 회원 임명
활동 시기/일시 1983년 10월 20일연표보기 - 김소동 예술원상 및 은관문화훈장 수상
몰년 시기/일시 1988년 11월 9일연표보기 - 김소동 사망
출생지 함창읍 -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지도보기
학교|수학지 함창공립보통학교 -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구향3길 38[구향리 63]지도보기
학교|수학지 니혼대학 - 일본 도쿄
학교|수학지 도쿄중앙음악학교 - 일본 도쿄
묘소 상주 선영 - 경상북도 상주시
성격 영화인
성별 남성
본관 함창
대표 경력 영화감독

[정의]

경상북도 상주 출신의 영화인.

[활동 사항]

김소동(金蘇東)[1911~1988]은 1911년 6월 3일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에서 태어났다. 1924년 함창공립보통학교[현 함창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니혼대학[日本大學] 예과에 다니면서 영화구락부에서 활동하였다. 1938년 도쿄중앙음악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다시 니혼대학 법문학부 법률학과를 마쳤다. 졸업 후 변호사가 되기 위하여 고등문관 시험을 보았으나 낙방하자, 1939년 귀국하여 경기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러나 김소동은 교사 생활이 뜻에 맞지 않아 교직을 그만두고 한국영화연구소를 만들었다. 한국영화연구소에서 시청각 교육을 위한 우리나라 최초의 소형 문화영화를 제작하였으며, 문교부를 통하여 문화영화의 보급에도 힘을 기울였다. 김소동은 1947년 「모란등기(牡丹燈記)」로 감독으로서 데뷔하였다. 「모란등기」는 한국 최초의 공포 영화로 분류되며, 녹음기사와 함께 직접 만든 녹음기로 제작한 광복 후 첫 유성 영화로 화제를 모았다.

김소동은 1951년 연희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으며, 6·25 전쟁 때는 부산에서 이청기·유두연·이진섭·전창근 등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를 창설하였다. 1956년에는 사극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를 감독하였고, 1957년에는 춘사(春史) 나운규(羅雲奎)의 20주기를 추모하기 위하여 나운규가 1926년 직접 제작·감독·주연한 영화 「아리랑」을 감독하였다. 「아리랑」은 작품성과 흥행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었고, 홍콩으로 수출되어 한국 영화 수출 제1호로 기록되었다.

1958년 상영 영화 「돈」은 김소동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으며, 리얼리즘을 기치로 내걸었다. 손기현 원작의 「돈」은 농촌 청년이 돈 때문에 겪는 고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근대적 가치에 의하여 무너져 가는 농촌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 주었으며, 드라마적 구성도 돋보인다는 호평을 받았다.

영화 제작은 물론 다양한 활동을 펼치던 김소동은 1960년 한양대학교 문리대에 우리나라 최초로 영화학과를 창설하는 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초대 영화학과 학과장으로 부임하여 영화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데에도 힘썼다.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1969년과 1972년 각각 문학석사와 문학박사를 받았다.

김소동은 1954년 영화감독협회 회장, 1957년 시나리오작가협회 회장을 지냈다. 1972년 영화학회를 발족하고 초대 회장을 지냈으며, 1980년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김소동은 1988년 11월 9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김소동의 시나리오는 「고가(古家)」, 「청춘쌍곡선」, 「호동왕자」 등이 있고, 희곡으로 「제2의 생명」, 「신라성(新羅城)」 등이 있다. 김소동이 감독한 영화는 1947년 「모란등기」, 1956년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1957년 「아리랑」, 1958년 「돈」, 1959년 「오! 내 고향」 등이 있다.

[묘소]

김소동의 묘소는 경상북도 상주시 선영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소동의 공적을 기려 1983년 10월 20일 예술원상과 은관문화훈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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