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0994
한자 成海植
영어공식명칭 Seong Hae-sik
이칭/별칭 성성인(成星仁)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9년연표보기 - 성해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23일 - 성해식 상주 장터 만세시위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28일 - 성해식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 선고
몰년 시기/일시 1939년연표보기 - 성해식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 12월 26일연표보기 - 성해식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23일 - 상주 장터 만세시위운동 시작
출생지 능암리 - 경상북도 상주시 내서면 능암리 지도보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성해식(成海植)[1899~1939]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다른 이름은 성성인(成星仁)이다.

[활동 사항]

성해식은 1899년 경상북도 상주시 내서면 능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3일 상주 장터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상주 장터 만세시위운동은 3월 중순부터 한암회(韓岩回)를 비롯한 강용석(姜龍錫), 조월연(趙月衍), 성필환(成必煥), 석성기(石盛基) 등 서울 유학생들과 상주 지역의 학생들에 의하여 추진되었다. 성해식 등은 전국에서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자, 3월 23일 상주 장날에 독립 만세를 부르기로 결정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3월 23일 오후 5시 30분경 한암회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자, 시장의 군중도 이에 호응하여 독립 만세를 외쳤다. 하지만 일본군 헌병이 한암회를 붙잡고 해산을 종용하였다. 그러자 6시 40분경 성해식(成海植)이 나서서 약 300명의 군중을 향하여 “나는 천한 사람이기는 하나, 이번에 조선이 독립한다 하니 제군과 함께 만세를 부르기로 한다”라고 말하며 대한 독립 만세를 3번 선창하였다. 이에 시장에 있던 군중과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독립 만세를 외쳤으며, 밤이 되어서야 해산하였다.

성해식은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다 주도자 4명과 함께 일본군 헌병에게 붙잡혀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서울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0년 3월 8일 가출옥으로 풀려났다.

성해식은 1939년 사망하였다.

[묘소]

성해식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5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성해식의 공적을 기려 1983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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