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4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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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尙州 場- 萬歲示威運動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성하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한준호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19년 3월 23일 - 상주 장터 만세시위운동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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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1919년 3월 23일 - 상주 장터 만세시위운동 종결 |
전개 시기/일시 | 1919년 4월 24일 - 상주 장터 만세시위운동 주도자 성필환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형 선고 |
전개 시기/일시 | 1919년 4월 28일 - 상주 장터 만세시위운동 주도자 강용석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2월 형 선고 |
전개 시기/일시 | 1919년 4월 28일 - 상주 장터 만세시위운동 주도자 한암회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 선고 |
전개 시기/일시 | 1919년 4월 28일 - 상주 장터 만세시위운동 주도자 성해식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 선고 |
전개 시기/일시 | 1919년 4월 28일 - 상주 장터 만세시위운동 주도자 석성기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 형 선고 |
전개 시기/일시 | 1919년 4월 28일 - 상주 장터 만세시위운동 주도자 조월연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형 선고 |
발생|시작 장소 | 상주 장터 - 경상북도 상주시 성하동 일대 |
종결 장소 | 상주 장터 - 경상북도 상주시 성하동 일대 |
성격 | 독립운동 |
관련 인물/단체 | 한암회|강용석|성해식|성필환|조월연|석성기 |
[정의]
1919년 3월 23일 경상북도 상주시 성하동 상주 장터에서 일어난 독립운동.
[역사적 배경]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민족 대표 29명은 서울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였다. 이어 2시 30분경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3·1 운동이 시작되었다. 경상북도 상주에서는 3월 23일 상주 장터에서 한암회(韓岩回)의 주도로 첫 만세운동이 전개되었고, 이어 3월 29일에는 이안면 소암리에서, 그리고 4월 8일과 9일에는 화북면 문장산(文藏山)과 운흥리에서 각각 일어났다.
[경과]
상주 장터 만세시위운동은 1919년 3월 23일 일어났다. 주도자는 한암회를 비롯한 강용석(姜龍錫), 조월연(趙月衍), 성필환(成必煥), 성해식(成海植), 석성기(石盛基) 등 서울 유학생과 상주 지역의 학생들이었다. 한암회 등은 3월 중순부터 전국에서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니, 3월 23일 상주 장날에 독립 만세를 부르기로 결정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3월 23일 오후 5시 30분경 먼저 한암회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자, 시장의 군중도 이에 호응하여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일본군 헌병이 한암회를 붙잡고 해산을 종용하였다. 하지만 6시 40분경 성해식이 약 300명의 군중을 향하여 “나는 천한 사람이기는 하나, 이번에 조선이 독립한다 하니 제군과 함께 만세를 부르기로 한다”라고 말하며 대한 독립 만세를 세 번 선창하였다. 이에 시장에 있던 군중과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독립 만세를 외쳤으며, 일본군 헌병의 강압적인 진압이 있었으나,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해산하였다.
[결과]
일본군 헌병에게 붙잡힌 주도자 5명 등은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다. 1919년 4월 24일 성필환이 징역 6월 형을, 4월 28일에는 강용석이 징역 1년 2월 형, 한암회와 성해식은 징역 1년 형, 석성기는 징역 10월 형, 조월연은 징역 6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의의와 평가]
상주 장터 만세시위운동은 상주 지역에서 일어난 첫 번째 만세시위운동이다. 주도층이 서울 유학생과 상주 학생들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