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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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月衍 |
영어공식명칭 | Jo Wol-yeon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한준호 |
출생 시기/일시 | 1901년 1월 21일 - 조월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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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3일 - 조월연 상주 장터 만세시위운동 주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28일 - 조월연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형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49년 12월 3일 - 조월연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2년 8월 15일 - 조월연 대통령 표창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23일 - 상주 장터 만세시위운동 시작 |
출생지 | 인평동 - 경상북도 상주시 인평동 |
묘소 | 국립서울현충원 -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동작동]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조월연(趙月衍)[1901~1949]의 본관은 풍양(豊壤)이다.
[활동 사항]
조월연은 1901년 1월 21일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인평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3일 보통학교 학생 신분으로 상주 장터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상주 장터 만세시위운동은 3월 중순부터 조월연을 비롯한 한암회(韓岩回)·강용석(姜龍錫)·성필환(成必煥)·석성기(石盛基) 등 서울 유학생들과 상주 지역의 학생들에 의하여 추진되었다. 조월연 등은 전국에서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자, 3월 23일 상주 장날에 독립 만세를 부르기로 결정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1919년 3월 23일 오후 5시 30분경 먼저 한암회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자, 시장의 군중도 이에 호응하여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일본군 헌병이 한암회를 붙잡고 해산을 종용하였다. 하지만 6시 40분경 성해식(成海植)이 군중 약 300명을 향하여 “나는 천한 사람이기는 하나, 이번에 조선이 독립한다 하니 제군과 함께 만세를 부르기로 한다”라고 말하면서 대한 독립 만세를 3번 선창하였다. 이에 시장에 있던 군중과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독립 만세를 외쳤으며, 밤이 되어서야 해산하였다.
조월연도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다 주도자 4명과 함께 일본군 헌병에게 붙잡혔다. 조월연은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조월연은 1933년 상주공립여자보통학교 학부형회에서 활동하였다.
조월연은 1949년 12월 3일 사망하였다.
[묘소]
조월연의 묘소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제1충혼당 3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조월연의 공적을 기려 1992년 8월 15일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