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13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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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곽현희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11월 30일 - 「노승의 예언」 상주시에서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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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상주 우복 종택 -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채릉산로799-90[우산리 193-2] |
성격 | 전설 |
주요 등장 인물 | 정번공|노승 |
모티프 유형 | 풍수지리담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에 노승의 예언 및 진주 정씨 가문과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노승의 예언」은 경상북도 상주에 살던 진주 정씨(晉州 鄭氏) 가문의 정번공(鄭番公)이 노승이 알려 준 명당에 산소를 들이고, 노승이 예언한 대로 행동하여 대대로 후손이 번창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노승의 예언」은 상주시에서 2010년 11월 30일 간행한 『상주시사』 4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우산사적대관(愚山史蹟大觀)』에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고 있다.
상주 사람 정번공(鄭番公)이 부모의 상을 당하였다. 장사 지낼 장지(葬地)를 구하지 못하여 초조해하고 있을 때, 앞개울에 빨래를 하러 나갔던 여종이 급히 달려와 아뢰었다. “방금 상좌를 데리고 지나가던 한 노승이 등 너머 명당이 있다고 말하는 상좌에게 천기를 누설한다고 꾸짖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에 정번공은 버선발로 20리[약 7.8㎞]나 뛰어가 겨우 노승을 만났다. 정번공은 노승의 길을 막고 애걸하였고, 편안히 누워 있는 소의 형상인 와우형(蝸牛形)의 한 명당을 얻어 거기에 아버지의 산소를 모시었다. 그런데 노승이 말하기를, “장사를 치른 후 즉시 북쪽으로 10리 밖으로 이주하고, 5대 만에 해생(亥生)[돼지의 해에 태어난 사람]이 나거든 혈식(血食)[털과 피가 있는 생고기를 종묘에 바쳐 제사 올림]하여야 한다”라고 하였다. 그러면 어진 사람이 세 명 출생할 것이며, 앞의 300년은 종파(宗派)만 왕성하고 뒤의 500년은 종지(宗支)가 함께 번성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였다. 정번공은 노승의 예언에 따라 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자 5대 만에 계해(癸亥)생인 정경세(鄭經世)[1563~1633]가 출생하였고, 이어서 정경세의 손자인 정도응(鄭道應)[1618~1667]과 정경세의 6대손이며 조선 후기 성리학자로 잘 알려진 정종로(鄭宗魯)[1738~1816]가 출생하였다. 이처럼 「노승의 예언」에는 진주 정씨 가문의 후손들이 등장하는데,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대제학이었던 정경세, 정도응, 조선 후기의 문신 정종로까지 모두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들이다. 임진왜란 때 영웅적으로 활약하였던 정기룡(鄭起龍)[1562~1622] 장군도 바로 진주 정씨 가문의 사람이다. 이처럼 진주 정씨는 상주와 깊은 인연을 맺은 가문이다.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에는 정경세가 일가를 이룬 상주 우복 종택(尙州 愚伏 宗宅)이 있다.
[모티프 분석]
「노승의 예언」에 나타나는 주요 모티프는 ‘풍수지리 명당’, ‘노승의 예언’, ‘진주 정씨의 내력’ 등이다. 「노승의 예언」은 진주 정씨 가문의 정번공이 명당에 부모의 산소를 들인 덕분에 자손이 번창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 속에는 자연의 형세와 위치가 인간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준다는 풍수지리 사상이 내재되어 있다. 풍수지리 사상은 집터를 찾는 양택풍수와 산소 터를 찾는 음택풍수가 있는데, 「노승의 예언」은 산소 터와 관련된 이야기인 음택풍수담이다. 또한 「노승의 예언」은 미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예언담이다. 예언의 결과로 실존하였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덧붙여 이야기의 신뢰성을 높이고 있다. 이처럼 「노승의 예언」을 통하여 대대로 훌륭한 자손이 나온 진주 정씨를 상주 지역민들은 신이하게 여겼으며, 신이함이 풍수지리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