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1428
한자 尙州 對山樓
영어공식명칭 Daesannu Pavilion, Sangju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채릉산로 799-46[우산리 193-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02년연표보기 - 상주 대산루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778년 - 상주 대산루 개축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8년 - 상주 대산루 복원 및 신축
문화유산 지정 일시 1982년 2월 24일연표보기 - 상주 대산루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6호 지정
문화유산 해지 일시 2018년 11월 1일 - 상주 대산루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6호 해지
문화유산 지정 일시 2018년 11월 1일연표보기 - 상주 대산루 국가민속문화재 제296호 지정
문화유산 해지 일시 2022년 12월 28일 - 상주 대산루 국가민속문화재 해지
문화유산 지정 일시 2022년 12월 28일연표보기 - 상주 대산루 보물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3년 - 상주 대산루 번와 보수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8년 - 상주 대산루 처마 보수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상주 대산루 국가민속문화재로 변경 지정
현 소재지 상주 대산루 - 경상북도 상주시 채릉산로 799-46[우산리 193-1]지도보기
성격 누정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5칸[단층]|5칸[중층]
측면 칸수 2칸[단층]|2칸[중층]
관리자 진주 정씨 종중
문화유산 지정 번호 보물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누정 겸 서실.

[개설]

상주 대산루(尙州 對山樓)는 영남학파의 대표 학자인 문신 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1563~1633]가 1602년 건립한 누정 겸 서실이다. 정경세의 별서로 건립된 뒤 후손에 의하여 정사와 누정, 서고를 함께 갖춘 복합 건물로 중건되었다.

상주 대산루는 1982년 2월 24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6호로 지정되었고 2018년 11월 1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6호에서 지정 해제되었다. 2018년 11월 1일 국가민속문화재 제296호로 승격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번호가 삭제되어 국가민속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2년 12월 28일 국가민속문화재에서 지정 해제되었다. 2022년 12월 28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위치]

상주 대산루는 경상북도 상주시 채릉산로 799-46[우산리 193-1] 이안천 연변에 있다. 우산리의 마을은 모두 남에서 북으로 흘러가는 이안천(利安川)[우산천] 좌우에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상주 우복 종택과 계정, 상주 대산루이안천이 바위를 만나 급하게 좌우로 방향을 꺾는 북쪽 산비탈의 경승지에 있다. 주변의 평야를 바라보고 배산임수의 지세에 따라 동향으로 있다.

[변천]

상주 대산루정경세가 고향에 은거하면서 별서로 건립하였다. 1778년 정경세의 6대손 정종로(鄭宗魯)[1738~1816]가 현재 모습으로 고쳐 지었다. 상주 대산루 앞에 있는 계정은 1603년 처음 세운 것을 1784년 고쳐 지었다고 한다. 1740~1750년대 상주 우복 종택율리에서 우산리로 옮겨 오면서, 종가에 인접한 별당 기능을 하였고, 이후 정종로상주 대산루에 머물면서 강학과 교류의 거점으로 삼았다. 1784년 서실 서편에 모옥을 건립하였고, 1809년 도존당을 건립하여 문중의 전당으로 삼았다. 1978년 건물을 해체 복원하고 담장과 일각문을 신축하였다.

[형태]

상주 대산루는 전체적으로 단층과 중층의 건물 2동이 ‘T’ 자형으로 결합된 평면 형태이다. 강변으로 나란하게 동향으로 지어진 정면 5칸의 단층집은 온돌과 마루가 있는 정사의 기능을 하고, 직각으로 붙은 2층의 누각은 강을 향하여 돌출된 누(樓)마루가 있다. 누마루 북쪽으로는 구들방 1칸과 마루방 3칸[1칸 창고방, 2칸 책방]이 이어져 있다.

단층 ‘一’ 자형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집이다. 평면은 남쪽으로부터 마루 2칸, 구들방 2칸이 나란하고, 구들방 앞으로는 툇마루를 두었다. 북쪽 끝 칸은 부뚜막 아궁이가 있는 부엌인데, 바로 옆에 붙은 2층 누각 건물의 아래층과 합쳐져 큰 부엌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엌 앞의 툇간은 기둥 사이에는 토석벽을 세우고 툇마루가 설치되는 부분에는 상층으로 오르는 돌계단을 설치하였다. 구조는 자연석 기단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아 툇기둥만 두리기둥이고 이외는 네모기둥을 세워 주상부는 민도리 형식으로 꾸며 처마 하중을 받았다. 우물마루칸의 북쪽 기둥 사이에는 판벽의 중앙에 통머름 위 외여닫이 살창, 남쪽 기둥 사이에는 역시 통머름 위에 쌍여닫이 살창을 달았다. 구들방은 마루와의 샛벽에는 사분합들문을 달았는데, 출입문이면서 필요시 방과 마루가 한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였다. 구들방의 앞의 툇마루 샛벽에는 각 칸마다 통머름 위에 쌍여닫이 살창을 달았다. 마루의 지붕 가구는 팔작지붕으로 충량을 대량과 직교하여 걸고 위에 추녀와 서까래를 받는 외기중도를 받쳤다. 방 천장은 종이반자, 마루는 서까래가 그대로 보이는 연등 천장이다. 지붕 가구는 대량, 종량과 중도리, 종도리가 서로 결구된 오량가이다.

중층 ‘一’ 자형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겹집형이다. 평면은 누하부 공간은 동쪽으로부터 빈 공간이고, 북쪽으로는 누상 구들방의 구들, 부엌, 창고가 이어져 있다. 누상은 동쪽부터 누마루 1칸, 구들방 1칸, 창고방 1칸, 책방 2칸이 일렬로 배열되어 있다. 누마루와 구들방은 단층 건물에서 올라오는 돌계단과 연계하여 남쪽으로 툇간이 마련되어 있고, 구들방 쪽을 제외한 삼면으로는 계자각헌함을 설치하였다. 이에 반하여 창고방과 책방은 뒤쪽에 해당하는 북쪽에 툇간을 두고 여기에 계자각험함을 삼면[남쪽, 서쪽, 북쪽]으로 설치하였다. 특히 남쪽과 서쪽의 계자각험함은 폭 좁은 쪽마루에 설치된 것으로 통행용이라기보다는 의장적 성격이다. 구조는 자연석 기단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누하주는 두리기둥 또는 팔각기, 누상주는 툇기둥에만 두리기둥이고 이외에는 네모기둥으로 차별성을 두었다. 구들방을 비롯한 창고방과 책방은 기둥 사이에 한식 토벽을 치고 통머름 위에 외여닫이 또는 쌍여닫이 살창을 달았다. 특히 창고방과 책방은 통상 수장 공간처럼 우물마루 바닥이지만 구들방처럼 벽과 창호를 시설한 점이 특징이다. 누상의 주상부는 간소한 민도리 형식이고, 지붕 가구는 오량가이다. 지붕이 팔작이므로 누마루 상부에는 측면 중앙 기둥상에서 대량과 직교하여 충량을 걸고, 추녀와 서까래를 받는 외기중도리를 받쳤다. 특히 누마루칸의 삼면으로는 창방 뺄목을 길게 빼내고서 각재를 서로 걸쳐 이은 부재가 남아 있는데, 용도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추녀에는 선자연걸기를 하였다. 지붕은 팔작에 한식 기와를 이었다.

[현황]

1993년 번와 보수, 1998년 처마 보수를 각각 시행하였다. 2022년 보물로 지정되어 보존·관리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상주 대산루는 조선 후기 가문의 생활사 및 별서 건축을 엿볼 수 있는 역사적 자료이다. 아울러 건축주의 검소한 취향 및 의식에 기반한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채와 실 구성, 창의성이 돋보이는 계단, 창호, 구조 등은 조선 후기 별서 건축의 형태를 잘 보여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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