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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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A Magnificent View that Supports The Sky, Gyeongcheondae |
이칭/별칭 | 자천대(自天臺)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삼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소희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23년 - 경천대 경상북도 주관 ‘2023년 무장애 관광 환경 조성 사업’ 선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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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경천대 -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52[삼덕리 산12-3] |
성격 | 관광지 |
전화 | 054-536-7040 |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삼덕리에 있는 경천대의 역사와 문화.
[개설]
경천대(擎天臺)는 하늘이 스스로 만들었다고 하여 일찍이 ‘자천대(自天臺)’라고도 불렀다. 낙동강 본류 중 경관이 가장 수려하여 ‘낙동강 제1경’으로 손꼽히며, 채득기(蔡得沂)[1605~1646]가 경천대 일대에 은거한 이래 경천대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우담십영(雩潭十詠)’으로 설정한 바 있다. 이후에도 조선 시대 많은 학자가 경천대를 방문하고 감상을 글로 남겼다. 현재는 경천대 일대를 중심으로 관광지가 조성되어 있어 조선 시대 학자들이 경영하였던 산수 경관을 많은 관광객이 함께 공유, 공감하고 있다.
[경천대의 경관적 특징]
상주시는 경상북도 최서쪽에 있다. 상주시는 다시 북쪽과 서쪽 지역을 백두대간의 여러 산줄기가 감싸고 동쪽은 낙동강의 상류 지대에 해당하며 전반적으로 서고동저의 지형을 이룬다. 천혜의 절경을 자랑하는 경천대는 낙동강 강변에 있으며, 행정적으로는 사벌국면 삼덕리 일대에 속한다. 이중환(李重煥)[1690~1756]의 『택리지(擇里志)』에 의하면,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황못]는 태백산 아래에 있으며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고 한다. 황지에서 발원한 물이 예안에 와서 서쪽으로 굽어 안동 남쪽을 감아 흐르며, 용궁과 함창 경계에서 남쪽으로 굽어 흐르면 비로소 낙동강이 된다. 상주 동쪽을 지나 낙동강이라 부르고 경상도의 중앙을 흐른다. 따라서 조선 시대에는 낙동강을 기준으로 경상도를 좌도와 우도로 나누기도 하였다.
경천대는 조선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자천대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많은 학자가 경천대를 방문하고 글을 남겼다. 대표적으로 택당(澤堂) 이식(李植)[1584~1647]은 「무우정기(舞雩亭記)」에 당시 경천대의 외관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위아래 모두 바위로 덮인 봉우리가 하나 있으니 옥주봉(玉柱峯)이며, 마치 흙을 쌓아 놓은 듯 그 위가 고루 평평하여 앉아서 놀 수 있는 곳으로 높은 대(臺)가 있으니 그 이름이 자천대이다. 이는 그 지역[상주] 사람들이 예부터 불러 온 이름이다. ……예부터 그 물[담수(潭水)] 아래에 복룡(伏龍)이 살고 있어 그 경치가 아무리 좋아도 사람들이 감히 그 근처에 터를 잡을 수 없었다. 옛날에는 가뭄이 들었을 때 그곳에서 기우제를 지냈으므로 ‘우(雩)’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계당(溪堂) 류주목(柳疇睦)[1813~1872]은 「자천대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상주 동쪽 20리[약 8㎞] 낙동강 상류 천주봉 아래에 있다. 산이 높지는 않으나 강상에 우뚝하게 솟은 초벽 2층으로 되어 있어 중층은 열리어 동(洞)이 되고……기암은 강에 인접하여 몇 겹의 대를 이루었다. 대 3층의 높이는 열 길이고 깊이는 십여 보이며, 그 위에는 수십여 명이 앉을 만하지만 사람의 용착을 하지 아니하고 하늘이 만들어 놓은 것이므로 자천대라 하였다.” 이를 통하여 조선 시대 경천대는 흙이 덮여 있고 수십여 명이 노닐 만한 평평한 지대였으며,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았고, 예부터 기우제의 공간으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는 「상락문회기」에서 자천대의 경관적 특징을 아주 구체적으로 기술하였다.
“자천대는 3층으로 되어 있으며 아래가 제일 넓고, 가운데는 앉을 수 있는 정도이다. 앞쪽에는 바위를 뚫어 소연분, 관분, 약분을 각각 하나씩 만들어 놓았다. 돌부리 때문에 몇 걸음을 걸어서 자천대의 상단에 오르니 한 길이나 되는 우뚝 솟은 괴석이 마치 귀신이 깎은 듯하다. 하단은 조금 평평하여서 사람 몇 명은 앉을 수 있을 듯하고 중앙에는 맷돌을 세워 놓고 바둑판을 그려 놓았다. 돌 위의 높은 소나무는 하나로 묶은 것처럼 붙어 있어서 그늘을 만들어 준다. 바위 주변으로 대나무, 유자나무, 치자나무, 오동나무, 개오동나무, 기이한 풀과 꽃이 서식한다.”
이처럼 3층으로 이루어진 자천대는 제일 아래가 가장 넓으며 맨 위 단은 괴석이 우뚝하게 솟아 있는 형상이다. 또 소나무들이 햇빛으로부터 나무 그늘을 만들어 준다.
[하늘을 떠받치고 펼쳐진 절경, 경천대 28경]
경천대는 낙동강 수계 중 가장 경관이 아름다워 ‘낙동강 제1경’으로 손꼽힌다. 일찍이 경천대 일대에 은거하였던 채득기는 경천대 주변의 아름다운 절경을 28경으로 지정하였는데, 주봉인 ‘천주봉’부터 ‘경천대’, ‘영귀문’, ‘고슬단’, ‘난가석’, ‘회란대’, ‘상봉산’, ‘죽암’, ‘옥주봉’, ‘와룡강’, ‘우담’, ‘무우정’, ‘천인대’, ‘조양대’, ‘귀암’, ‘관어대’, ‘미구’, ‘율원’, ‘옥탄’, ‘유정문’, ‘향로봉’, ‘오동제월’, ‘봉일정’, ‘경호’, ‘매정’, ‘호암’, ‘학사’, ‘문진파’이다. 대표적인 경관은 다시 10경으로 설정하고 ‘우담십영’이라 하였는데, ‘회곡춘화(會谷春花)’, ‘우담추월(雩潭秋月)’, ‘남간유앵(南澗流鶯)’, ‘동령한송(東嶺寒松)’, ‘천대이석(天臺異石)’, ‘평사낙안(平沙落鴈)’, ‘옥주조운(玉柱朝雲)’, ‘귀암모우(龜巖暮雨)’, ‘전탄어화(箭灘漁火)’, ‘원암청경(圓庵淸磬)’이다. 현재 김상헌(金尙憲)의 문집인 『청음집(淸陰集)』에 수록되어 있으며, 경천대와 주변 경관을 포함하여 낙동강 가의 경관까지 담고 있다. 이 중 5경 천대이석과 9경 전탄어화를 각각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첨 만들 땐 귀신 도끼 수고롭혀 다듬었고[經始應煩鬼斧裁]
아름다운 이름은 또 천대에서 빌려 왔네[美名仍借自天臺]
신선 한번 떠나간 뒤 쓸어 주는 사람 없어[仙翁一去無人掃]
풍우 속에 매년 길이 푸른 이끼 끼어 있네[風雨年年長綠苔]
회곡이나 매촌 마을 모두 어옹 사는 데라[檜曲梅村盡釣翁]
배 가득 등불 빛이 강물을 붉게 비치는구나[滿船燈火倒江紅]
누가 알리오. 한밤중 어부 사는 집의 흥이[誰知半夜漁家興]
일찌감치 시인이 읊는 시 속으로 들어온 걸[早入詩人賦詠中]
[경천대에 깃든 이야기]
경천대에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인 정기룡(鄭起龍)[1562~1622]과 용마에 관한 전설이 내려온다. 정기룡의 자는 경운(景雲), 호는 매헌(梅軒), 본관은 진주이며, 출생지는 경남 사천시 곤양이다. 원래 이름은 정무수(鄭茂壽)였으며 정기룡이 무과에 급제한 뒤 방을 붙이려고 할 때 선조가 신룡(神龍)이 종루(鐘樓)에서 일어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이에 선조가 정기룡에게 ‘용이 일어난다’라는 뜻의 ‘기룡’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정기룡의 이름을 통하여서도 무예 실력이 상당하였을 것을 짐작할 수 있는데, 정기룡은 1586년(선조 19) 25세에 무과에 합격한 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방어사(防禦使) 조경(趙儆)을 따라 영남으로 왔다. 이후 거창, 김산(金山) 등지에서 공을 세웠으며 김성일이 경상도관찰사로서 정기룡을 상주가판관(尙州假判官)에 임명함으로써 상주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당시 상주성은 왜적들이 점거하고 있었는데, 정기룡은 병사 100여 명을 상주성 동쪽에서 잠복하게 하고, 일부는 성의 서북쪽에, 또 장수 일부는 문에 배치하고 동문 쪽만 길을 열어 두었다. 그리고 일제히 횃불을 들고 공격하여 상주성을 수복하였다. 이렇게 정기룡이 상주에서 전승을 거두는 과정에서 경천대 아래 용소에 나온 용마(龍馬)를 발견하고 용마를 잡아 함께 수련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여 오고 있다.
한편 인조 때 채득기가 경천대 인근에 은거하면서 지은 「천대별곡(天臺別曲)」이라고도 하는 「봉산곡(鳳山曲)」도 유명하다. 채득기의 자는 영이(詠而), 호는 우담(雩潭) 또는 학정(鶴汀)이고, 본관은 인천이며, 출생지는 충북 충주이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남한산성이 함락되자 상주 무지산(無知山)에 들어가 시내 위에 별좌대(別座臺)를 쌓고 두문불출하며 학문 연구에만 전념하였다.
이후 천주봉(天柱峯) 아래 우담(雩潭)으로 거처를 옮기고 무우정(舞雩亭)을 지었다고 한다. 현재 무우정 왼쪽에 경천대가 있는데, 경천대에도 ‘대명천지(大明天地) 숭정일월(崇禎日月)’ 여덟 글자를 새겨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그리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등이 심양에 볼모로 잡혀갈 때 인조가 채득기를 왕호(往護)로 불렀으나 병을 이유로 나아가지 않아 보은에 3년 동안 유배되기도 하였다. 이후 인조의 권유로 해배되어 심양에 따라갈 때 그 기쁨을 읊은 가사가 「봉산곡」이다.
[경천대와 연계된 인근 관광지]
현재 경천대 일대는 다양한 관광 시설을 마련하여 산책로를 조성하였으며, ‘경천대국민관광지’라 부르기도 한다. 세부적으로는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경천대를 비롯하여 토끼 관찰장, 정기룡 장군 동상, 인공 폭포, 경천대 유래비, 돌담길, 황토볼 체험장, 돌탑, 전망대, 포토 존, 맨발 체험장, 무우정, 봉산곡, 나무다리, 요트 체험장, 드라마 세트장, 출렁다리, 용소, 구름다리, 이색 조각 공원, 야영 캠프장, 밀리터리테마파크 등이 있다. 이 중 ‘인공 폭포, 경천대 유래비, 황토 돌담길, 전망대, 경천대, 나무다리, 촬영장, 출렁다리, 구름다리, 육각정자, 인공 폭포’로 돌아오는 1시간 거리의 산책 코스가 대표적이다. 2023년 3월 2일에는 경상북도 주관으로 ‘2023년 무장애 관광 환경 조성 사업’에 경천대국민관광지가 최종 선정되었다. 이로써 무장애 전기버스 운행, 장애인 화장실 개선, 안전 펜스 등을 설치하여 장애인, 노약자, 어린이, 유아 동반 가족 등이 관광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거듭나게 되었다.
경천대 인근에는 임진왜란 의병장인 정기룡 장군을 모시는 충의사[상주시 사벌국면 금흔리 345], 의주 상인 임상옥의 생애를 그린 「상도」 드라마 촬영지, 9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 상주 화달리 삼층석탑(尙州 化達里 三層石塔)[상주시 사벌국면 화달리 857], 경상북도 기념물 전사벌왕릉(傳沙伐王陵)[상주시 사벌국면 화달리 산44-1], 경천대가 바로 눈앞에서 보이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 등이 있다.
또 경천대국민관광지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2015년 개관한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상주시 도남2길 137(도남동 산39-21)]이 있다. 담수생물을 연구하고 동물 박제품을 비롯하여 산과 강의 생태계를 알 수 있어 어린이와 함께 가 볼 만한 관광지이다. 그리고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에서 다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경천섬공원[상주시 중동면 오상리 968-1]이 있다. 경천섬공원은 ‘낙동강 희망의 숲’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으며, 경천섬으로 들어가는 길은 범월교, 낙강교 두 교량을 이용할 수 있다. 약 20만㎡의 면적에 나비동산, 잔디 광장, 억새숲 등이 조성되어 있다. 경천섬 주변으로 상주보수상레저센터[상주시 용마로 366(도남동 120-7)], 상주 자전거박물관[상주시 용마로 415(도남동 산3-19)], 상주국제승마장[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83-47(삼덕리 산23-2)], 밀리터리테마파크[상주시 사벌국면 경천로 654(삼덕리 산12)], 도남서원[상주시 도남2길 91(도남동 175-1)] 등 다양한 관광 자원이 연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