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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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尙道邑誌 尙州牧邑誌 咸昌縣邑誌[1832] |
영어공식명칭 | Gyeongsang-do Eupji Sangju-mok Eupji Hamchang-hyun Eupji[1832] |
분야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재두 |
[정의]
[개설]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상주목읍지」·「함창현읍지」는 1832년(순조 32) 규장각(奎章閣)의 지시로 경상감영에서 완성한 경상도 도지의 상주목과 함창현 읍지이다. 감영의 완성본은 규장각으로 보고하여 현전하고 있지만, 당시 완성본과 같은 복본(複本)을 남겼는지는 알기 어렵다. 각 고을에 남아 있는 1832년 읍지를 보면, 경상감영의 완성본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저자]
『경상도읍지』 는 1832년 박기수(朴岐壽)와 김양순(金陽淳)이 경상감사로 재임할 때 경상감영에서 완성하였다. 『경상도읍지』 「상주목읍지」·「함창현읍지」 편찬 당시 상주목사는 1832년 1월 임명된 유병주(兪秉柱)였으며, 함창현감은 1830년 7월 임명된 홍응모(洪應謨)였다.
[편찬/간행 경위]
『경상도읍지』 는 1832년 규장각의 지시로 경상감영에서 편찬되었다. 당시 규장각은 『각도읍지(各道邑誌)』에 빠진 고을 읍지를 채워 넣어 완질을 갖추기 위하여 읍지 수집 공문을 내려 『각도읍지』를 완성하였다. 이에 경상감영에서는 1768년에 보급한 『여지도서』 대체 유형[『경상도읍지』 유형] 수록 항목에서 임수(林藪)와 군기(軍器)를 독립 항목으로 분리한 규식(規式)을 각 고을에 내려 보냈다. 그리고 각 고을에서 보고한 읍지의 항목과 내용을 점검하여 미흡하거나 지나친 경우는 수정하도록 지시하였다. 경상감영은 교정·교열 작업을 거친 뒤 검은색 인찰지(印札紙)에 20행 20자로 서사(書寫)가 정서한 정본(正本)을 만들었다.
한편 『경상도읍지』는 원래 『각도읍지』 경상도편 20책이었는데,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각도읍지』 80책 중 경상도편을 1878년에 편찬한 『경상도읍지』 14책으로 대체하면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남게 되었다.
[형태/서지]
『경상도읍지』 20책은 필사본으로 판식은 오사란인찰판(烏絲蘭印札板)이며, 크기는 세로 35㎝, 사로 22.6㎝이다. 인찰지(印札紙)에 1면 10행, 1행의 자수 20자씩 정서하였으며, 첫 장에는 채색 지도를 실었다. 「상주목읍지」는 제6책에 「창원부읍지」·「상주목읍지」 순으로 제본되어 있으며 분량은 49장 98면이다. 「함창현읍지」는 제17책에 진해·진보·함창·지례·고령 순으로 제본되어 있으며 24장 48면이다.
[구성/내용]
『경상도읍지』 「상주목읍지」는 건치 연혁, 군명, 관직, 성씨, 산천, 풍속, 방리(坊里), 호구(戶口), 전부(田賦), 군액(軍額), 성지(城池), 임수(林藪), 창고, 군기(軍器), 관애(關阨)[관액], 진보(鎭堡), 봉수, 학교, 단묘(壇廟), 능묘(陵墓), 불우(佛宇), 공해(公廨), 누정, 도로, 교량, 도서(島嶼), 제언(堤堰), 장시, 역원, 목장, 형승(形勝), 고적, 토산, 진공(進貢), 봉름(俸廩), 환적(宦蹟), 과거(科擧), 인물, 제영(題詠), 책판(冊板) 순이다. 전부 항목에는 한전(旱田), 수전(水田),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세(均稅), 화세(火稅)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호구는 원호 1만 7877호, 인구 6만 5035명이다. 비판(碑板)에서 책판을 분리하였으며, 비문(碑文)은 아예 싣지 않았다.
「함창현읍지」 수록 항녹은 「상주목읍지」 수록 항목에 비해 제영과 책판 사이에 비판을 둔 것을 제외하면 같다. 호구는 1831년[신묘식] 기준으로 원호 2,746호, 인구 9,873명이다.
[의의와 평가]
19세기 초반 상주목과 함창현의 역사, 인물, 지리, 조세, 군역 등 지역의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