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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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大胤 |
영어공식명칭 | Cho Daeyoon |
이칭/별칭 | 계창(季昌),입재(立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638년 - 조대윤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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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72년 - 조대윤 통덕랑 가자 |
몰년 시기/일시 | 1705년 - 조대윤 사망 |
출생지 | 상주목 장천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
묘소|단소 | 조대윤 묘소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비룡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성 |
본관 | 풍양(豊壤) |
[정의]
조선 후기 상주 출신의 학자.
[가계]
조대윤(趙大胤)[1638~1705]의 본관은 풍양(豊壤)이며, 자는 계창(季昌), 호는 입재(立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봉상시정 조정(趙靖)이고, 할아버지는 조영원(趙榮遠)이다. 아버지는 조릉(趙稜)이고, 어머니는 부호군 왕준도(王濬道)의 딸 개성 왕씨(開城 王氏)이다. 부인은 현감 김형(金珩)의 딸 상산 김씨(商山 金氏)이고, 아들은 조해(趙瀣)이다. 형은 조계윤(趙啓胤)이고, 동생은 조지윤(趙枝胤)·조첨윤(趙添胤)·조증윤(趙增胤)·조연윤(趙衍胤)이다.
[활동 사항]
조대윤은 1638년(인조 16) 경상도 상주목 장천(長川)[현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에서 태어났다. 성균관에서 공부하였으나 당쟁의 폐단을 목격하고 낙향하여 학문 연구에 힘썼다. 1672년(현종 13) 통덕랑에 가자되었다.
조대윤은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특히 아버지 조릉의 봉양과 병수발에 정성을 다하였다. 조릉이 병들었을 때 하룻밤에 네다섯 번씩 일어나 편안한지를 살폈고, 조릉의 장례를 치른 후에는 날마다 묘소를 살폈다. 만년에는 봉암산(鳳巖山) 아래에 망송재(望松齋)를 짓고 거주하였는데, 매일 부모의 묘소를 바라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조대윤은 1705년(숙종 31)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조대윤의 저술로는 『입재유고(立齋遺稿)』 2권 1책을 비롯하여 선현의 여러 교훈을 발췌한 『계치록(戒癡錄)』과 예서인 『동현의례문답(東賢疑禮問答)』이 있다.
[묘소]
조대윤의 묘소는 상주시 낙동면 비룡리에 있으며, 조현명(趙顯命)이 묘표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