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9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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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龍錫 |
영어공식명칭 | Kang Yong-seok |
분야 |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한준호 |
출생 시기/일시 | 1899년 - 강용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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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3일 - 강용석 상주 장터 만세시위운동 주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28일 - 강용석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2월 형 선고 |
몰년 시기/일시 | 1960년 - 강용석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8월 15일 - 강용석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3월 23일 - 상주 장터 만세시위운동 시작 |
출생지 | 인봉동 - 경상북도 상주시 인봉동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강용석(姜龍錫)[1899~1960]의 본관은 진주(晋州)이며, 동생은 독립운동가 강봉석(姜鳳錫)이다.
[활동 사항]
강용석은 1899년 경상북도 상주시 인봉동에서 태어났다. 상주공립보통학교 졸업생 신분으로 1919년 3월 23일 상주 장터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상주 장터 만세시위운동은 3월 중순부터 강용석을 비롯한 한암회(韓岩回), 조월연(趙月衍), 성필환(成必煥), 석성기(石盛基) 등 서울 유학생들과 상주 지역의 학생들에 의하여 추진되었다. 강용석 등은 전국에서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자, 3월 23일 상주 장날에 독립 만세를 부르기로 결정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3월 23일 오후 5시 30분경 먼저 한암회가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자, 시장의 군중도 이에 호응하여 독립 만세를 외쳤다. 그러자 일본군 헌병이 한암회를 붙잡고 해산을 종용하였다. 하지만 6시 40분경 성해식(成海植)이 약 300명의 군중을 향하여 “나는 천한 사람이기는 하나, 이번에 조선이 독립한다 하니 제군과 함께 만세를 부르기로 한다”라고 말하며 대한 독립 만세를 3번 선창하였다. 이에 시장에 있던 군중과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독립 만세를 외쳤으며, 밤이 되어서야 해산하였다.
강용석은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하다 주도자 4명과 함께 일본군 헌병에게 붙잡혀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2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서울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0년 4월 27일 풀려났다.
강용석은 1960년 사망하였다.
[묘소]
강용석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갑동 산23-1]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3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강용석의 공적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