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1066
한자 農業
영어공식명칭 Agricuture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노광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토지를 이용하여 생산물을 얻는 경제 활동.

[개설]

상주시는 대한민국 농업(農業)의 중심 도시이다. 경지 면적은 경상북도 1위이고 전국 지방 자치 단체 가운데 여섯 번째로 넓다.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왔던 상주는 농업의 역사도 유구하여 선사 시대부터 벼농사 등 농업이 이루어졌고 삼국 시대부터는 벼농사 등이 본격화하였다. 일찌감치 벼농사 등 농업이 발달한 상주는 조선 시대에는 ‘삼백(三白)의 고장’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삼백은 원래 쌀, 목화, 누에고치를 뜻하였는데 지금은 목화 대신 곶감이 들어간다.

[상주의 농업 여건과 역사]

농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기후와 지형이라고 할 수 있다. 경상북도 서북부 내륙에 위치한 상주는 서남북의 3면이 준엄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동부는 낙동강에 연한 평야지로서 일반적으로 지세는 동으로 평탄하다. 낙동강 연안의 토지는 비옥하여 사벌국면, 공성면, 함창읍을 연이은 상주평야는 미곡의 주산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기후는 대륙성 기후로서 삼한 사온이 뚜렷하며, 연평균 기온은 12~13℃ 정도로 온화한 편이고 연간 강우량은 1,050㎜ 내외이다. 논 면적은 전체 면적의 15%인 182.10㎢이고, 밭 면적은 7%인 86.16㎢이다. 상주 지역은 넓은 평야와 적정한 강우량, 많은 일조량 등 농작물 재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상주 지역은 삼국 시대 이전부터 농사가 시작되었으며, 관개 시설에 의한 수전(水田) 경작이 발달하였다. 삼한 시대에는 공검면 양정리상주 공검지[이칭 공갈못]를 축조하여 관개 시설을 확보함으로써 자연재해를 극복하는 선진 농법도 구현하였다. 못 둑의 길이가 430m이고 못 둘레가 8.5~8.9㎞, 못 깊이는 2~3m에 이르는 상주 공검지는 상주 농업 발전의 원동력이자 상주 농업의 기원을 상징하는 저수지이다.

고려 시대에는 국고 수입 확보를 위한 권농 정책이 실시되면서 상주 지역에서도 간척 사업과 수리 사업이 크게 발달하였으며, 농작 방법으로는 이모작형(二毛作型)의 윤작법 및 간작법 등이 발달되어 토지 생산성이 향상되었다. 조선 전기 지방 행정 8도제 하에 경상도를 관할하던 경상감영(慶尙監營)이 상주에 위치하였는데 당시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상주 농업이 얼마나 번창하였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삼백의 고장’이라는 명성을 얻은 조선 시대 상주쌀은 임금의 진상미로 수라상에 오를 만큼 품질을 인정받았다. 2022년 현재 상주쌀은 경상북도 1위, 전국 9위의 생산량을 자랑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1970년대]

일제 강점기 일제는 식민지 통치의 근간을 마련하기 위하여 토지 조사 사업을 실시하여 근대적 토지 소유권 증명 제도를 확립하였으며, 지세 제도의 정비 및 재편을 통하여 식민 통치를 위한 재정 수입원을 안정으로 확보하였다. 일제는 또한 산미 증산 계획을 통하여 관개 개선, 지목 변경, 개간 간척 등 토지 개량 사업을 실시하였으며, 또한 시비 증대, 신품종 보급, 장종법 개선 등 농사 개량 사업도 실시하였다.

해방 후 정부는 1949년 자영농 육성과 농업 생산력 증진으로 인한 농민 생활의 향상을 위하여 농지 개혁을 단행하였고 1953년에는 제1차 농업 증산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수리 시설의 확충, 비료의 증시, 종자 개량, 병충해 방제, 경종법 개선 등을 추진하였다. 1957년에는 농촌의 신용 제도 개선을 위하여 「농업은행법」, 「농업협동조합법」 등을 공포하여 농업의 발전을 시도하였으며, 1961년에는 「농어촌고리채정리령」이 공포되어 농어촌민의 생활고를 해결하려 하였던 중농정책(重農政策)이 전개되기도 하였다.

1970년대에는 새 벼 품종인 통일벼가 개발되어 쌀의 자급이 달성되면서 녹색 혁명을 이루었고, 새마을 사업과 농어촌 소득 증대 사업이 전개됨으로써 농민의 생활 환경과 경제적 여건이 크게 향상되었다. 1970년 상주 지역 농가 수는 3만 2877가구, 농업 인구는 19만 6721명이다. 상주 지역은 논농사에 적합한 기후 조건과 토질을 갖추고 있어서 벼농사 위주의 농업 경영법이 발달하여 농업 발전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업의 발달로 인하여 농업이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경지 면적이 축소되었고 농업 인구의 감소 현상이 나타났다. 1970년 후반에 들어서면서 농기계가 도입되기 시작하였으며 경운기, 농업용 트랙터, 동력 이앙기 등이 도입되어 농촌의 부족한 인력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1980~1990년대]

1980년대 들어서면서 농촌의 노동력 부족과 임금 인상으로 영농 기계화 조건이 성숙됨에 따라 농민들의 영농 형태가 생계 농업에서 상업 농업으로 전환되었다. 도농 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하여 농촌에 공업화 유도, 농업 소득원 개발, 농촌 생활 환경 개선, 영농 후계자 육성 및 농업 제도의 개선 등 고도 산업 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농어촌 종합 대책이 마련되었다. 특히 1980년대는 농업인 스스로 농업 단체를 만들어 작목을 다양화하는 한편 농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유기 농법 도입 등 다각적인 노력을 전개하여 전문화 농업의 정착 단계에 진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상주 지역은 농가 수나 농업 인구수에서 급격한 감소 현상이 나타났다. 1980년대 3만 6호였던 농가 수는 1999년에는 1만 9035호로 36.6% 감소하였다. 또한 농업 인구수에서도 1980년 14만 3114명이었던 것이 1999년에는 5만 3427명으로 62.7% 감소하였다. 농업에 종사하는 농가 인구가 감소한 것은 농산물 개방과 농촌의 고령화로 농업에서 이탈하는 인구가 증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지 면적 역시 감소하여 1980년 3만 809㏊이었던 것이 1999년에는 2만 8412㏊로 축소되었다. 과일이나 채소 재배가 늘어나면서 벼농사 중심에서 시설 원예 채소와 과일류 생산으로 전환되면서 논의 비중은 감소한 반면 밭의 면적은 늘어났다. 1인당 경지 면적은 1980년 1㏊이었던 것이 1990년에는 1.5㏊로 증가하였다. 농업 인구의 감소와 농업 인구수가 감소하면서 농가 1인당 경지 면적은 크게 증가한 것이다.

[2000년대 이후]

2000년대 이후에도 세계화 바람과 함께 농업의 개방화가 진전되면서 상주 지역의 농가 수와 농가 인구수는 크게 감소하였다. 1999년 농가 수 1만 9035호, 농업 인구수 5만 3427명이었던 것이 2020년에는 농가 수 1만 2582가구, 농업 인구수는 2만 6146명으로 감소하였다. 그러나 가구당 경지 면적은 135㏊에서 197.5㏊로 크게 증가하였다.

1990년대 이후 농가 수와 농업 인구수는 줄었지만 상주는 농가 수, 농업 인구수, 농지 면적 등 모든 면에서 전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농업 중심 도시이자 품질 좋은 농특산물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다. 상주곶감과 오이, 양봉[꿀]은 전국 생산량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상주한우는 전국 생산량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외에도 전국 생산량 3위를 차지하고 있는 배를 비롯하여 상주쌀, 복숭아, 사과, 새송이, 오미자 등이 높은 품질을 인정받고 있는 상주시의 대표적인 농특산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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