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1287
한자 不遷位 祭禮
영어공식명칭 Immutable Position Ritual Formalities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기원

[정의]

경상북도 상주시에서 학문이나 공이 높은 불천위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 의례.

[개설]

불천위(不遷位)는 5대조 이후에도 신주를 묻지 않고 사당에 영구히 두면서 제를 지내는 조상을 일컫는다. 4대 봉사 이후에는 신주를 묻는 것이 원칙이지만 학문적인 업적이 뛰어나거나 국가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의 경우에는 신주를 사당에 영구히 모실 수 있다. 이러한 불천위에 대한 제사에는 기제사와 달리 익히지 않은 희생 제물을 올리기 때문에 불천위를 ‘혈식군자(血食君子)’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천위는 인물의 업적이나 지위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조상숭배를 넘어서 지역이나 국가에서 기념하거나 추도한다는 성격을 띤다. 불천위를 모시는 문중의 처지에서 보면 조정이나 유림에서 제를 모실 만한 위대한 선조를 가졌다는 영예가 주어지기 때문에 문중 구성원들의 단결과 동질감을 강화하여 준다. 이러한 이유로 불천위는 5대조를 중심으로 한 종가의 형성 요건으로 꼽힌다.

경상북도 상주 지역에는 정경세(鄭經世)·류진(柳𥘼)·노수신(盧守愼)·조정(趙靖)·조대윤(趙大胤)·이전(李㙉)·이준(李埈)·강신(姜紳)·전식(全湜)·송량(宋亮)·성람(成灠)·조우인(曺友仁)·채수(蔡壽)·권달수(權達手)·김범(金範)·손만웅(孫萬雄) 등 16명의 불천위가 있고, 불천위를 중심으로 종가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중에서 정경세조정의 불천위 제사를 예로 들어 상주 지역의 불천위 제례를 살펴보자.

[우복 정경세 불천위 제사]

지금의 상주시 청리면 율리 출신인 우복(愚伏) 정경세[1563~1633]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정경세의 불천위 제사는 음력 6월 17일,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에 있는 종택에서 이루어진다. 제사는 종손 부부가 준비한다. 기일 하루 전날인 입제일에 종손은 목욕재계하고 어머니와 함께 상주 시장에서 장을 보아 제반 준비를 한다. 안채에서는 제물을 마련하고 종손은 사당과 집안의 안팎을 청소하고 오후부터는 각지에서 온 종친과 손님을 응대한다.

제사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종택에 도착하면 이름과 거주지 등을 기록하고 집사 분정(執事 分定) 과정을 통하여 헌관을 비롯하여 진설, 집례, 축관 등 여러 집사를 선정한다. 불천위 제사이므로 기제사와 달리 다른 문중의 내빈도 집사로 참여한다. 초헌은 종손이 맡고, 아헌은 종부가 맡는다. 종헌은 상주향교의 전교(典校) 등 지역 유림 인사가 맡는다.

제사상은 종택의 대청 북벽에 병풍을 치고 설치한다. 신위를 기준으로 가장 바깥에 있는 1열에는 대추, 밤, 배, 감 따위를 순서대로 놓고 제철 과일과 약과, 정과를 차려 둔다. 바로 뒤인 2열에는 자반과 물김치를 양쪽 끝에 놓고 각종 나물을 자반과 물김치 사이에 올린다. 3열에는 탕을 놓는데 종가에서는 제사의 성격에 따라 탕의 종류를 다르게 한다. 기제사에 3탕을 쓴다면 불천위 제사에는 7가지의 탕을 올린다. 4열에는 면과 편을 제사상 좌우 끝에 올리는데 제사상이 좁아 편은 작은 상에 따로 놓아서 올린다. 5열에는 메와 갱을 놓는데, 비위(妣位)가 둘이라 3쌍의 메와 갱이 올라간다. 가장 왼쪽에는 시접을 놓는다.

제삿날 저녁 8시가 되면 종손이 사당에 가서 출주고사를 지내고 신위를 제사상으로 모신다. 정경세의 불천위를 제사상의 교의(交椅)에 두고 개독(開櫝)하면 참례자 일동이 두 번 절하여 참신례를 행한다. 이후 종손이 초헌례를 한 뒤 어적(魚炙)을 올린다. 초헌을 마치면 축관이 축문을 읽는다. 독축이 끝나면 초헌은 재배를 하고 종부가 아헌을 한다. 아헌 때는 독축을 하지 않고 육적을 올리며 4배를 한다. 종헌은 신위에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순서인데, 절차는 아헌 때와 같다. 헌작을 한 후에 계적을 올리고 종헌 후에는 술을 물리지 않는다. 헌작을 마치면 유식(侑食)와 합문(闔門)을 한다. 합문 때는 병풍을 제사상에 둘러치고 모든 제관이 고개 숙여 엎드리며, 축관이 기침을 세 번 하면 일어난다. 마지막으로 헌다(獻茶)를 하고 사신(辭神) 재배(再拜)를 하는 것으로 끝난다. 주인은 술잔을 물리고 축문을 태운 뒤 음복을 한다.

[검간 조정 불천위 제사]

검간(黔澗) 조정[1555~1636]은 조선 후기의 문인으로,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인 상주 양진당(尙州 養眞堂)을 세운 주인공이다. 조정의 불천위 제사는 풍양 조씨(豊壤 趙氏) 장천파(長川派) 문중에서 경작하는 위토의 수익금과 중앙 종중에서 지원하는 지원금을 비용으로 사용한다. 과거에는 고지기가 준비를 맡았으나 현재는 문중 종회장 부부가 전담하고 있다. 제물 준비는 문중의 네 개 파에서 각각 유사를 선정하여 유사들이 장을 본다. 제수 음식은 상주 양진당 뒷마당에서 만든다. 불천위 제사를 위한 제수 음식은 많은 정성을 요한다. 특히 떡을 쌓아 올리는 편을 만들려면 조악, 전, 까꾸리, 잡과편, 부편, 쑤구리, 송기송편, 경단, 백편, 찰편, 본편 등 11가지의 떡을 정성 들여 준비하여야 한다. 이 밖에도 7종류의 육고기와 생선구이, 대구포와 문어포, 생문어, 방어, 한과, 국수, 쌈, 5종류의 탕, 과일 등을 준비한다.

조정의 불천위 제사는 음력 7월 21일 새벽 6시에 지낸다. 2000년 무렵에는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에 지냈지만, 종손을 비롯한 문중 구성원들이 제사를 위하여 먼 타지에서도 오기 때문에 편의를 위하여 조정하였다고 한다. 전날 늦은 시간부터 제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도착하면 집사 분정을 한다. 종손이 초헌관을 맡는다. 풍양 조씨 장천파에 속한 4개 파가 안배하여 아헌, 종한, 축관, 집례 등을 맡는다. 집사 분정을 마치면 준비한 음식을 차린다.

보통 사당에서 제사를 올리는데 비가 오면 상주 양진당 종택에서 제사를 올린다. 이때는 종손이 출주고사를 지내고 사당에서 신위를 제청으로 모신다. 제물을 모두 차리면 참신례를 한다. 모든 제관이 재배를 한다. 참신례를 마치면 초헌관이 향을 피우고 재배한 후에 잔을 올리는 강신례를 한다. 그다음으로 초헌례를 행하는데, 초헌관은 손을 씻고 재배한 후 첫 잔을 올리고 문어를 올린다. 초헌 후에는 축관이 축문을 읽고 초헌관이 재배한다. 다음으로 아헌례와 종헌례가 이어지며, 각각 잔을 올리고 닭, 쇠고기를 올리고 재배한다. 종헌례를 마치면 종손이 첨작을 한다. 첨작을 마치면 사당문을 닫고 합문을 한다. 종택의 제청에서 제사를 지낼 때는 병풍을 친다. 모든 제관은 축관이 기침을 세 번 할 때까지 사당 밖이나 병풍 앞에서 엎드려 있는다. 합문을 마치면 국을 치우고 숭늉을 올리는 철갱과 헌다, 재배를 하는 것으로 제사를 마친다. 제사를 마치면 신위를 닫고 축문을 태운 뒤 상을 치우고 음복을 준비한다. 음복을 준비하는 사이 오랜만에 모인 문중 구성원들은 문중의 대소사를 논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4.09.30 인명 수정 류진(柳袗) → 류진(柳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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