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101398
한자 文學
영어공식명칭 Literatur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상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목주

[정의]

경상북도 상주 지역에서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개설]

문학(文學)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와 문자로 표현한 예술 및 작품을 일컫는다. 상주의 문학은 크게 전통 시대 상주의 문학과 근현대 상주의 문학으로 살펴볼 수 있다. 상주의 문학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특징 중 한 가지는 문회(文會)나 시회(詩會)를 통하여 훌륭한 문학 작품을 남기고 있다는 점이다. 연악문회(淵嶽文會)와 낙강시회(洛江詩會)가 대표적이다.

[전통 시대 상주의 문학]

고려 시대 이전의 상주 문학은 구비 문학의 범주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하는 단계였으나, 견훤(甄萱)[867~935]과 관련된 설화는 구비 문학의 백미로 꼽힌다. 후대 상주 문학사에서 전문학(傳文學) 내지 소설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문헌 자료의 미비로 전모를 다 밝힐 수 없으나, 헌강왕(憲康王)[?~886], 최치원(崔致遠)[857~?] 등의 비문(碑文)이 상주에 전하여 내려옴으로써 유사한 문체의 문학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고려 전기의 상주 문학은 비문 4편과 기문(記文) 1편이 남아 있어 양적으로는 미미하나, 향토민의 문학 활동이 왕성하였으리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상주 출신의 김수자(金守雌)가 「행학기(幸學記)」라는 기문을 남겨 『동문선(東文選)』에 수록된 일이다. 기문은 창작 목적이 실용에 있지만, 여러 표현 기법이나 체재는 후대 창작인에게 모범이 된다. 고려 후기에는 시(詩), 기(記), 묘지(墓誌), 제문(祭文) 등에 걸출한 문인이 많았는데, 상주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많은 작품을 남기고 한국 문학사에 오른 문인들도 많다. 상주 문학의 품격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기문의 수준이 높음을 여실히 보여 주는데, 임춘(林椿), 이색(李穡)[1328~1396] 등이 지은 기문이 『동문선』에도 수록되어 후대 상주에서 우수한 기문학 작가를 배출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조선 전기는 『동문선』에 많은 작품을 남겨 상주 문학의 위상을 제고(提高)한 김효정(金孝貞)[1383~?], 김수온(金守溫)[1410~1481] 등이 있다. 「낙동진(洛東津)」, 「낙동요(洛東謠)」 등의 시를 『동문선』에 남겨 낙강(洛江)의 명성을 전국에 떨친 김종직(金宗直)[1431~1492]은 자연 앞에서 인간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임으로써 풍자·비판 시의 진수를 상주 문학사에 선물하였다. 이어서 연산군(燕山君)[1476~1506]의 폭정에 지조를 지켜 목숨을 잃거나 유배되었던 표연말(表沿沫)[1449~1498], 홍귀달(洪貴達)[1438~1504], 채수(蔡壽)[1449~1515], 이세인(李世仁)[1452~1516], 권민수(權敏手)[1466~1517], 권달수(權達手)[1469~1504], 홍언충(洪彦忠)[1473~1508], 홍언국(洪彦國) 등은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 시를 많이 지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내우외환이 극심하였던 시기는 아이러니하게 상주 역사상 가장 인물이 번성하였던 시기이다. 조선 전기에는 주로 함창 중심의 상주 문학이었다면, 조선 후기로 넘어오면서 상주읍성 중심으로 위상이 바뀐다. 이때 상주 문학을 주도한 선비들의 대부분은 이준(李埈)[1560~1635], 정경세(鄭經世)[1563~1633] 등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1542~1607]의 문하생이었다. 시, 일기, 서발(序跋), 기, 설화, 기행록, 전(傳), 시조, 수필, 가사 등 다양한 문체에 특기할 만한 작품과 이론을 남김으로써 상주 문학이 확고한 이론적 바탕 위에서 창작되고 문체가 개발되기도 하였다. 상주 문학의 난숙기(爛熟期)였다 할 만하다. 그리고 이때 명실공히 낙강시회(洛江詩會)가 상주 문학 활동의 한 특징이 되었다.

조선 후기에 안으로는 사화(士禍)와 민란, 세도 정치, 서학(西學) 배척 등의 격동이 있었고, 밖으로는 전혀 수용 능력이 없는 세계 열강의 외교 압박이 지속되던 중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이 상실되고 마는 시기가 이어졌다. 조선 후기의 다양한 문학을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주목할 만한 문인과 작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 후기 활동하였던 시인으로는 이만부(李萬敷)[1664~1732], 권상일(權相一)[1679~1759], 정종로(鄭宗魯)[1738~1816], 황오(黃五)[1816~?] 등이 있고, 이만부의 『지행록(地行錄)』은 지지(地誌)를 겸한 기행록의 백미(白眉)라 평가받는다. 「금강산기(金剛山記)」도 금강산 기행문으로는 최고 수준의 작품이다. 정종로의 「옥리기(玉里記)」, 황오의 「칠십이안기(七十二雁記)」 등도 한국 문학사에 남을 만한 작품이다. 일기로는 권상일(1679~1759)의 『청대일기(淸臺日記)』가 주목할 만한데, 1702년부터 1759년까지 58년간의 일기로 당대의 정치사, 민속, 농민사 등을 파악하는 데 귀중한 자료적 가치가 있다.

상주의 한글 문학을 살펴보면, 먼저 채수(蔡壽)가 만년에 상주 이안으로 낙향하여 쾌재정(快哉亭)에서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인 「설공찬전(薛公瓚傳)」을 빼놓을 수가 없다. 한글 가사로는 조우인(曺友仁)[1561~1625]의 「매호별곡(梅湖別曲)」과 채득기(蔡得沂)[1605~1646]의 「봉산곡(鳳山曲)」[「천대별곡(天臺別曲)」]이 주목할 만하고, 일기는 류성룡의 셋째 아들로 11세 때 겪은 임진왜란의 견문을 뒷날 회상하여 기록한 류진(柳𥘼)[1582~1635]의 『임진록(壬辰錄)』이 주목할 만하다.

상주 문학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특징 중 하나는 바로 연악문회(淵嶽文會)와 낙강시회(洛江詩會)이다. 연악문회의 결과물로 상주 선비들의 최초 공동 시집인 『연악문회록(淵嶽文會錄)』이 있고, 낙강시회의 결과물로 『임술범월록(壬戌泛月錄)』[『낙강범월시(洛江泛月詩)』], 『홍판관운(洪判官韻)』이 있다. 특히 낙강시회는 1196년 백운(白雲) 이규보(李奎報)[1168~1241]가 상주 낙강(洛江)[낙동강]에서 시회를 연 이래로, 1862년 계당(溪堂) 류주목(柳疇睦)의 시회까지 666년 동안 총 51회의 시회를 열었다. 2002년 근곡(槿谷) 박찬선(朴贊善)이 ‘낙강시제(洛江詩祭)’로 개칭하고 호방한 문학 정신을 계승하고 재현하여 전국적 문학 행사로 부활시켰다. 낙강시제는 낙강시회의 횟수와 합쳐 2023년 제73회를 맞게 되며, 참가한 문인들의 작품을 모아 『낙동강 시선집』도 발간하고 있다. 낙강시회는 ‘낙동강문학’이라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 ‘강 문학’이라는 새 지평을 열어 가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민요는 민중의 소리이다. 예로부터 농경 문화를 꽃피웠던 상주는 민요의 고장이다. 상주를 대표하는 민요에는 「채련요(採蓮謠)」[「연밥 따는 노래」], 「서보가」, 「상주 아리랑」 등이 있다. 「채련요」는 삼한 시대 때 만들어진 공갈못을 배경으로 형성된 노래이다. 상주민요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한국 민요 가운데 ‘모심기노래’의 백미(白眉)로 알려진 노래이다. 「서보가」는 「채련요」와 함께 상주민요의 쌍벽을 이루는 민요인데, 황금물결이 넘실거리는 가을 들판에서 부르는 풍년가이자 격양가(擊壤歌)로서 절로 흥을 북돋우는 노래이다. 설화는 견훤 관련 설화와 정기룡(鄭起龍)[1562~1622] 관련 전설, 그리고 상주를 이상적 삶의 터전으로 인식하는 우복동(牛腹洞) 전설이 특기할 만하다.

[근현대 상주의 문학]

개화기 상주 문학에서 우선 주목할 만한 것은 동학 가사이다. 상주의 동학은 삼풍(三豊) 김주희(金周熙)[1860~1944]에 의하여 창도(唱導)되었으며, 상주 동학 가사는 전래 가사의 정리와 개작, 김주희의 창작으로 이루어졌다. 1933년까지 대대적인 동학 가사 간행 사업을 벌이는데, 총 40책 100편의 가사집을 간행하였다. 1860년대 최제우(崔濟愚)로부터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동학 가사의 집대성이란 점에서 특기할 만한 일이며, 가사가 사대부의 전유물에서 일반 백성들과 소통하고 공유하는 문학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것이다. 또 장지연(張志淵)[1864~1921]은 언론인으로서 민족 구국의 선봉에서 활약하였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비롯하여 애국 계몽 소설인 『애국부인전』은 일제 강점기 초에 민족적 수난에 대응한 민족 저항심의 고취라는 점에서 의의가 큰 작품이다. 또 장지연은 시언지(詩言志) 정신을 보여 주는 시 작품을 많이 집필하였다.

상주의 현대 문학에서 1950년대는 공백기였다. 1960년대 비로소 문학 단체가 구성되고 본격적인 문예 활동이 시작되기 전에 공백기를 메워 준 역할을 한 시인이 이대희(李大熙)[1925~1990]이다. 1950년대는 6·25 전쟁의 격동기로 문학 활동이 매우 어려웠음을 감안하면 이대희는 아주 귀한 존재이다. 상주는 ‘아동 문학의 보고(寶庫)’라고 불릴 정도로 아동 문학가들의 활동이 왕성하였고 훌륭한 작품도 많다. 상주 아동 문학을 이끄는 두 바퀴는 상주아동문학회와 상주글짓기회이다. 1960년대 이오덕(李五德)[1925~2003], 최춘해(崔春海)[1932~], 권태문(權泰文)[1938~] 등을 비롯하여 이후 많은 아동 문학가들이 열정을 가지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상주에서 활동하는 문학 단체로는 한국문인협회 상주지부, 들문학회, 숲문학회, 느티나무시동인, 문학 웹진 문학마실, 시노리, 상주작가회 등이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4.09.30 인명 수정 류진(柳袗) → 류진(柳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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