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1007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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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豊壤 趙氏 |
영어공식명칭 | Pungyang J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상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석달호 |
본관 | 풍양 - 경기도 남양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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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지 | 운평리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운평리 |
세거|집성지 | 승곡리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승곡리 |
세거|집성지 | 운평리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운평리 |
성씨 시조 | 조맹(趙孟) |
입향 시조 | 조사충(趙思忠) |
[정의]
조맹을 시조로 하고 조사충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상주시의 세거 성씨.
[연원]
풍양 조씨(豊壤 趙氏)의 시조는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문하시중 평장사를 지낸 조맹(趙孟)이다. 『풍양조씨세보(豊壤趙氏世譜)』에 따르면 조맹의 원래 이름은 조암(趙巖)이며 한양부 풍양현 사람으로 천마산(天摩山) 아래에서 은거하다가 태조 왕건(王建)을 만나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우고 삼한벽상 개국공신에 올라 맹(孟)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후손들이 조맹을 시조로 삼고 풍양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풍양 조씨는 크게 천화시전직을 지낸 조지린(趙之藺)을 중시조로 하는 전직공파(殿直公派)와 평장사를 지낸 조신혁(趙臣赫)을 중시조로 하는 평장공파(平章公派)로 나뉘고, 이후 2개 파는 다시 호군공파(護軍公派)·남원공파(南原公派) 등 7개 파로 분파되었다.
[입향 경위]
1371년(공민왕 20) 조사충(趙思忠)·조사공(趙思恭) 형제는 국정을 어지럽히는 신돈(辛旽)을 제거하려고 모의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조사공은 처형되고 조사충은 지금의 상주시 운평리로 피신하였다고 한다. 이후 조선 중엽에 조정(趙靖)[1555~1636]이 낙동면 승곡리로 이주하였고,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세거하였다.
[현황]
상주 지역 풍양 조씨 주요 세거지는 낙동면 승곡리와 운평리 등이다. 2015년 통계 자료에 따르면 상주시에 거주하는 풍양 조씨는 총 1,244명으로 파악되었다.
[관련 유적]
상주 지역 풍양 조씨 관련 유적으로는 보물로 지정된 상주 양진당·조정 종가 문적·조정 임진란기록 일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된 상주 승곡리 추원당,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청간정·상주 용산정사·풍양조씨 족보 판목 및 보각·상주 검간 조정 문집목판,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상주 오작당 등이 있다.